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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생활 & 아랍문화

라마단, 아랍 문화를 만나다

 

UAE 그랜드 모스크

 

UAE에 살면서 여전히 생소한 것 중에 하나가 라마단이다. 이슬람 5대 의무중 하나인 라마단은(رمضان) 금식절로서  한달여간 해가 뜨는 시간에는 물을 포함하여 음식 일체를 먹지 않는다. 나아가 일체의 욕망을 절제하고 금욕하는 시기로 담배와 시샤(물담배)도 멀리하고 부부관계도 하지 않는 시기이다.   

라마단은 아랍어로 타는듯한 더위와 건조함이라는 뜻의 라미다(ramida)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40-50도가 육박하는 한여름에 물과 음식없이 버티기란 쉽지가 않다. 사막지역이라 해가 5시가 되면 떠서 14-15시간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한달여에 걸쳐 금식을 하기 때문에 신체 반응이 느려지고,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워 진다. 그래서 무슬림들의 근무시간을 통상 8시간에서 2시간 단축한 6시간만 근무하도록 노동법에 명시해 놓을 정도이다. 

과거 도시가 형성되기 전 사막에서 살때는 사막 모래 위 온도가 60도까지 육박하기 때문에 외부 활동이 불가능하여 낮에는 주로 집과 텐트에서 잠을 자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해가 떠 있는 시간에 아부다비 시내 거리에 나가보면 카페들과 음식점들이 문을 닫고 있어 도시가 죽은 도시처럼 조용하다. 

라마단 기간이 힘들지 않은지 무슬림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어린 시절부터 습관화가 되어 음식을 먹지 않는것은 힘들지는 않은 편이라고 대답하곤 한다. 오히려 일상속으로 파고든 아랍 커피와 시샤 그리고 담배를 피울수 없기 때문에 힘든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친한 아랍 동료들과 이야기 해보면 조심스레 라마단 기간에 금식이 힘들어 유럽 등 다른 국가로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의 사례도 다수 있고, 남들의 시선을 피해 폐쇄된 곳에서 담배 등은 피운다고 하니 여간 힘들지 않은가 보다. 

2년전 사무실에 근무하는 무슬림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이슬람 문화를 이해하는 차원에서 한달여간 아침과 점심을 단식을 시도해 본 적이 있다. 완전 금식은 어렵다고 판단해 물과 커피는 마시기로 했다. 또한 외부 점심 약속등 불가피한 경우에는 예외로 하기로 했다. 

첫 3일은 배가 찢어질 것 같은 배고픔에 냉장고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 닫았다를 수차례 반복하곤 했다. 배고픔 뿐만 아니라 뇌에 탄수화물 당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니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픈 나날이 반복되었다. 외부 점심 약속이 잡히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자 나름 몸이 금식에 적응해 나가는 듯 했다. 배는 여전히 고프지만 파도처럼 잠시 왔다가 조금 지나면 배고픔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한달이 지나자 4kg 정도 살이 빠지게 되면서 결혼 이후 처음으로 목표로 했던 몸무게에 도달하는 수확이 있었다. 

라마단의 의미에 대해서 무슬림 동료들과 이야기 하다 보면 종교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먹는것’이라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 상태인 배고픔을 통해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의식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나아가 일상에서 배를 곪는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돌봄을 실천하는 시기라고 한다. 이슬람에는 5대 의무중에 하나로 자선을 베푸는 ‘자카트(زَكَاة‎)’가 있다. 수입의 대략 2.5% 정도를 기부하고 자선 활동을 위해서 사용하는 교리인데 라마단 기간에 가장 활발하게 구제가 이뤄진다고 한다. 

라마단 기간에는 운전을 하면서 지나가다 보면 길에 청소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돈을 주는 아랍 운전자들을 종종 목격할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슬람 사원마다 텐트를 설치하고 해가 지고 나면 음식들을 준비하여 하루의 첫 끼니인, 이프타(افطار) 한달 내내 무료로 제공한다. 이 자선을 통해 가난하고 허기를 채우지 못하는 노동자들과 배고픈 이웃들이 마음껏 음식을 먹을수가 있다. 

개인적으는 교회를 다니고 신앙인으로서 교회에서도 금식도 하고, 구제 사역도 많이 해 보았지만 매년마다 찾아오는 라마단을 통해 정기적이고 지속적으로 실시하는 구제 활동은 무슬림 형제들에게 한수 배우는 계기가 되곤 한다. 

라마단의 또 하나의 특징중에 하나는 ‘밥상으로 하나되는 공동체’이다. 베두인으로서 부족 공동체를 오랜기간 형성했던 정체성에 기반하여 아랍 문화에는 가족 중심, 공동체 중심의 문화가 뿌리깊게 내려있다. 로컬 아랍인들은 성인과 아이들을 망라하여 주말, 공휴일이면 모두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는 집을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함께 시간을 보낸다. 과거 한국의 대가족으로서 함께 살던 시절이 떠오른다. 

라마단 기간에는 해가 지고 나면 하루의 첫 끼니인 이프타를 먹게 되는데, 로컬 아랍인들은 가족 뿐만 아니라  친척들이 초대하여 수십명이 함께 모여 대규모 저녁 식사를 한다. 가족 외에도 친한 친구들, 동료들을 초대하여 저녁 식사를 함께하고, 외부인 누구라도 아무 집에 불쑥 찾아가는 경우에도 환대 해 주고 저녁 식사를 내어준다. 사막에서 천막을 치고 유목을 하던 베두인들은 자신의 집을 찾는 누구라도 물과 아랍 커피 그리고 대추야자를 내주었는데 아랍의 환대문화는 베두인에서게 내려 왔다고 한다. 

 

베드인들의(Bedouin) 사막 이동

 

지인의 이프타 저녁식사에 초대를 받은 사람이라면 새벽 2-3시까지 있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아랍식 천막에 걸터 앉아 차와 커피, 고기와 야채, 아랍식 과자 등 밤새 끊임없이 나오는 음식들을 먹으며, 밤새 쉬지 않고 이야기를 하는데 가족, 회사일뿐만 아니라 부족 역사, 전쟁과 정치 그리고 은밀한 야화까지 주제들이 다채롭게 밤새 이어진다.  아랍 텐트에 앉아 있으면 왜 천일야화가 아랍에서 왔는지, 어떻게 천일동안 이야기가 계속 될수 있는지를 나름 이해할수 있게 된다.    

UAE에서 라마단을 경험하면서 무슬림과 아랍의 문화를 조금씩 맛보아 알아가고 있다. 첫 라마단은 생소하고 사막처럼 뜨겁고 건조해서 불편하다고만 생각했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어쩌면 사막 오아시스의 그늘과 시원한 물처럼 달콤하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